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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발견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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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Kosta의 개인상담시간에 오갔던 대화의 내용이다.

“저는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농구와 축구처럼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죠. 그리고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몸을 움직 는 방법을 가르치면 빨리 배우고 쉽게 배워요. 그래서 체육선생님이 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신을 못 받았어요. 수련회 때 목사님들이 위대한 꿈을 꾸라고 이야기 하시는데 체육 선생님이 되는 것이 위대한 꿈은 아닌 것 같아요. 기도해도 확신이 생기지 않고요. 어떡하죠?”

"네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해 민첩하고 또 잘 움직일 수 있게 해 준 것은 누구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몸을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지혜는 누가 주셨을까?"

“그야… 하나님께서 주셨겠죠?”

“그럼 네가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원은 누가 주셨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제게 소원을….”

"그럼 그 하나님 말고 또 다른 하나님으로부터의 확신이 필요하겠니?"

"..."

"하나님은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너에게 이미 주셨어. 너는 그것을 발견한 것이지."

"감사해요, 선교사님. 이제 확신이 들어요."



청소년들은 개인상담시간에 미래와 직업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

문과냐, 이과냐, 어떤 직업을 가져야 되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목사님들이나 수련회 강사님들은 위대한 꿈을 꾸라고 하는데 나의 꿈은 무엇이고 또 그 꿈은 위대한 것인가, 도대체 위대하게 꿈은 어떻게 꾸는 것인가 등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성경에서 위대한 꿈을 꾸어 성공한 사람을 찾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요셉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꿈을 향해 끝까지 견뎠다.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을 이루었다. 그 꿈은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위대한 꿈이었다’라는 것이 요셉의 스토리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요셉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가 위대한 꿈을 꾸기 위해 비전선언문을 쓰고 매일 아침마다 그것을 되뇌었다는 이야기나, 하나님께 위대한 꿈을 달라고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는 이야기도 없다.



요셉은 자신이 생각하고 뜻을 정한대로 위대한 꿈을 꾼 자가 아니었다.

그 시대에 존경받는 민족의 정치가를 롤모델 삼고, 그와 같은 위대한 정치가를 목표로 정진하여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꿈을 꾸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비전이나 야망 혹은 위대한 꿈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적용함으로 위대한 꿈을 꾼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작은 꿈을 꾸면 작은 자가 되고 위대하고 큰 꿈을 꾸면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말에 의하면 꿈이 클수록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는 상관없이 꿈만 잘 꾸면 환상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텐데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은 그렇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요셉이 스스로 꿈을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실 일들을 꿈꾸게 하셨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요셉은 다만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해 나갔을 뿐이다.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나의 은사는 무엇인지를 요셉은 인생에 다가오는 사건, 사고를 계기로 알게 된 것 뿐이다.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꿈을 꾸게 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는지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 이다.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환영받는 ‘위대한 꿈’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 환영받는 자기만의 ‘위대한 꿈’을 발견하도록 그들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